<파칭코> ‘김(조)선자’ 이야기

1915년 부산 영도. ‘양진(전인지)’, 하숙집 아들에게 시집와 매년 세 아들을 낳았는데 하나같이 돌도 안 돼 병으로 잃는다. 그는 자신의 저주를 풀어달라고 무당을 찾아가 굿을 부탁했고, 이윽고 선자(김민하/아역:정유나)를 낳는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밝게 자란 선자는 어느 날 식민지가 된 조선이 처한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한편 1989년 일본 출신의 솔로몬 백(진하)은 미국 금융회사에서 승승장구하다가 부사장 승진에서 밀려나자 일본 도쿄에서 고착상태에 빠졌던 대사업의 성공을 조건으로 승진과 인센티브를 약속받는다. 그렇게 일본의 친정인 오사카로 돌아온 그는 천황 ‘히로히토’의 죽음 소식을 보게 되는데… 1915년 부산 영도. ‘양진(전인지)’, 하숙집 아들에게 시집와 매년 세 아들을 낳았는데 하나같이 돌도 안 돼 병으로 잃는다. 그는 자신의 저주를 풀어달라고 무당을 찾아가 굿을 부탁했고, 이윽고 선자(김민하/아역:정유나)를 낳는다. 부모님의 사랑으로 밝게 자란 선자는 어느 날 식민지가 된 조선이 처한 현실을 목격하게 된다. 한편 1989년 일본 출신의 솔로몬 백(진하)은 미국 금융회사에서 승승장구하다가 부사장 승진에서 밀려나자 일본 도쿄에서 고착상태에 빠졌던 대사업의 성공을 조건으로 승진과 인센티브를 약속받는다. 그렇게 일본의 친정인 오사카로 돌아온 그는 천황 ‘히로히토’의 죽음 소식을 보게 되는데…···

 

원작 소설을 번역한 한국 초판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순자’로 번역돼 있었다. 이는 영어로 된 원문에서의 주인공 이름 ‘선자’를 한글로 ‘순자’로 번역한 것인데, 이를 알게 된 ‘민진리’ 측이 ‘문학사상’ 측에 ‘선자’로 바꿔 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받아들여 출판사는 이후 ‘순자’를 ‘선자’로 바꾸고, 이 사항에 대해 책 속 ‘이라두기’에 넣어뒀지만 미처 이를 읽지 못한 독자들은 “출판사가 주인공의 이름을 오타했다”는 항의를 듣기도 했다. 번역자가 왜 ‘선자’를 ‘순자’로 번역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추측할 수 있는 점은 있다. 20세기 초 조선에서는 일제의 강제창씨개명을 강요받던 시기여서 일본 여성의 이름에 자(子)를 많이 붙인 것에 영향을 받아 딸이 태어나면 이름 끝에 자(子)를 붙이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덕분에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이름이 ‘○○아이’인 경우가 많은데, 그 이름 중 ‘순자’도 많았다. 이를 번역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선자’를 ‘순자’로 인식한 번역가의 판단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순한(순)이란 뜻이 되기 때문에 원작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와는 다르다. 개인적으로 ‘민진리’가 주인공을 ‘선자’로 정한 이유는 그녀의 이름을 ‘조선’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송자’가 일본에 정착해 살면서 쓴 일본식 이름이 ‘반도 노부코’이고, 이를 일본식 발음으로 읽으면 ‘반도 노부코’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조선’이나 ‘반도’ 등 ‘송자’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을 조국에 두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원작 소설을 번역한 한국 초판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이 ‘순자’로 번역돼 있었다. 이는 영어로 된 원문에서의 주인공 이름 ‘선자’를 한글로 ‘순자’로 번역한 것인데, 이를 알게 된 ‘민진리’ 측이 ‘문학사상’ 측에 ‘선자’로 바꿔 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를 받아들여 출판사는 이후 ‘순자’를 ‘선자’로 바꾸고, 이 사항에 대해 책 속 ‘이라두기’에 넣어뒀지만 미처 이를 읽지 못한 독자들은 “출판사가 주인공의 이름을 오타했다”는 항의를 듣기도 했다. 번역자가 왜 ‘선자’를 ‘순자’로 번역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추측할 수 있는 점은 있다. 20세기 초 조선에서는 일제의 강제창씨개명을 강요받던 시기여서 일본 여성의 이름에 자(子)를 많이 붙인 것에 영향을 받아 딸이 태어나면 이름 끝에 자(子)를 붙이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덕분에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이름이 ‘○○아이’인 경우가 많은데, 그 이름 중 ‘순자’도 많았다. 이를 번역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선자’를 ‘순자’로 인식한 번역가의 판단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순한(순)이란 뜻이 되기 때문에 원작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와는 다르다. 개인적으로 ‘민진리’가 주인공을 ‘선자’로 정한 이유는 그녀의 이름을 ‘조선’에서 따온 것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송자’가 일본에 정착해 살면서 쓴 일본식 이름이 ‘반도 노부코’이고, 이를 일본식 발음으로 읽으면 ‘반도 노부코’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조선’이나 ‘반도’ 등 ‘송자’라는 캐릭터의 정체성을 조국에 두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이렇게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배경으로 하고 있는 1915년, 그리고 1989년 두 가지 시점에서 시작된다. 1915년 ‘선자(김민하/아역: 정유나)’가 태어나기 전, 그녀의 어머니 ‘양진(전인지)’의 입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1930년대 10대를 맞은 선자가 맞이하는 끔찍한 삶의 서막이 된다. 그리고 1989년은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선자(노역: 윤여정)’의 손자인 ‘솔로몬 백(진하)’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하는 시점이다. ‘솔로몬 백’은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와 예일대를 졸업하고 금융회사에서 잘 지내다가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되어 급히 귀국했고, 그의 아버지이자 선자의 아들 ‘모자스(박소희)’는 오사카에서 큰 새총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동시에 시작된 시점, 1915년과 1989년은 단적으로 ‘일본왕’과 관련된 설정이 아닐까 싶다. 1915년은 123대 천황 다이쇼가 즉위식을 치른 해(1912년부터 재위)였고 1989년은 124대 천황 쇼와(히로히토)가 사망함으로써 그의 재위가 끝난 해이기 때문이다. 이들 ‘다이쇼’, ‘쇼와’ 시기의 일본은 그야말로 ‘(그들의 입장에서만) 영광의 시대’였다. 동아시아에 역대급 식민지를 거느리기도 하고 원자폭탄 2개를 맞아 한동안 꿈틀거렸지만 625전쟁을 계기로 일어선 끝에 20세기 말에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나기도 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거품경제가 꺼지기 직전인 1989년 말 일본 닛케이지수는 38,915였지만 현재는 아직 3만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두 천황이 재외한 70여 년 동안 일본은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배경으로 하고 있는 1915년, 그리고 1989년 두 가지 시점에서 시작된다. 1915년 ‘선자(김민하/아역: 정유나)’가 태어나기 전, 그녀의 어머니 ‘양진(전인지)’의 입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1930년대 10대를 맞은 선자가 맞이하는 끔찍한 삶의 서막이 된다. 그리고 1989년은 어느덧 노년에 접어든 ‘선자(노역: 윤여정)’의 손자인 ‘솔로몬 백(진하)’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귀국하는 시점이다. ‘솔로몬 백’은 일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고등학교와 예일대를 졸업하고 금융회사에서 잘 지내다가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되어 급히 귀국했고, 그의 아버지이자 선자의 아들 ‘모자스(박소희)’는 오사카에서 큰 새총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동시에 시작된 시점, 1915년과 1989년은 단적으로 ‘일본왕’과 관련된 설정이 아닐까 싶다. 1915년은 123대 천황 다이쇼가 즉위식을 치른 해(1912년부터 재위)였고 1989년은 124대 천황 쇼와(히로히토)가 사망함으로써 그의 재위가 끝난 해이기 때문이다. 이들 ‘다이쇼’, ‘쇼와’ 시기의 일본은 그야말로 ‘(그들의 입장에서만) 영광의 시대’였다. 동아시아에 역대급 식민지를 거느리기도 하고 원자폭탄 2개를 맞아 한동안 꿈틀거렸지만 625전쟁을 계기로 일어선 끝에 20세기 말에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나기도 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거품경제가 꺼지기 직전인 1989년 말 일본 닛케이지수는 38,915였지만 현재는 아직 3만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바로 이 두 천황이 재외한 70여 년 동안 일본은 최고의 전성기를 보낸 시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 패권을 놓고 벌인 청일전쟁(189495)과 러일전쟁(19042005)에서 승리한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을 기점으로 경제적 활황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도입부는 이를 겨냥해 설정한 듯하다. 그 당시 일본에는 일자리가 넘쳐났고, 일본 본토의 사업가들도 저임금의 식민지 조선인을 적극적으로 모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의 농민들 역시 일본이 실시한 ‘토지 조사 사업’과 ‘신맛 증산 계획’ 등으로 일제에 농경지를 빼앗기자 근거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도시(?)라고 해도 일이 많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본 여행을 결심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 드라마에서는 일제시대 당시 200만 명 이상의 조선인이 일본으로 이주(이 중 80만 명은 강제징용)했다고 언급한다. 실제로 이들 중에는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상남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출신이 많았다. 참고로 당시 「제주도」는 행정 구역상 1915년부터 1946년까지는 「전라남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위 글에서 일본 도항자 중 「전라남도」 출신으로 구분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한수」 그리고 그의 아버지처럼 「제주도」 출신이 많았다. 참고로 이 작품의 ‘송자’는 부산 출신이고, ‘한수(이민호)’는 제주도 출신, ‘노상현’은 평양 출신으로 설정되어 있다. 일본의 70여 년의 융성기는 일본인에게 심한 우월함에 취하게 함으로써 식민지 조선과 해방된 한국은 물론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동북아 패권을 놓고 벌인 청일전쟁(189495)과 러일전쟁(19042005)에서 승리한 일본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을 기점으로 경제적 활황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이 드라마의 도입부는 이를 겨냥해 설정한 듯하다. 그 당시 일본에는 일자리가 넘쳐났고, 일본 본토의 사업가들도 저임금의 식민지 조선인을 적극적으로 모집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의 농민들 역시 일본이 실시한 ‘토지 조사 사업’과 ‘신맛 증산 계획’ 등으로 일제에 농경지를 빼앗기자 근거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을 것이다. 조선의 도시(?)라고 해도 일이 많았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본 여행을 결심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 드라마에서는 일제시대 당시 200만 명 이상의 조선인이 일본으로 이주(이 중 80만 명은 강제징용)했다고 언급한다. 실제로 이들 중에는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경상남도, 전라남도, 경상북도 출신이 많았다. 참고로 당시 「제주도」는 행정 구역상 1915년부터 1946년까지는 「전라남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위 글에서 일본 도항자 중 「전라남도」 출신으로 구분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한수」 그리고 그의 아버지처럼 「제주도」 출신이 많았다. 참고로 이 작품의 ‘송자’는 부산 출신이고, ‘한수(이민호)’는 제주도 출신, ‘노상현’은 평양 출신으로 설정되어 있다. 일본의 70여 년의 융성기는 일본인에게 심한 우월함에 취하게 함으로써 식민지 조선과 해방된 한국은 물론 ‘재일 한국인’에 대한 차별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바로 이런 점이 1930년대 시점에서 친일 사업가 ‘한수(이민호)’가 조선을 ‘더러운 과거’라고 한 것과,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송자’가 넓은 세계를 보면서 ‘우리도 이길 수 있다’는 것으로 충돌하는 것과 대비된다. 융성기에 접어든 20세기 초의 일본과 그에 신음하던 조선인을 그린 1930년대와 불황의 시대로 접어들기 직전인 1989년의 일본과 여전히 그 일본에서 생존해 온 재일교포를 대비하듯 말이다. 주인공 ‘송자’를 중심으로 하여 많은 상징적인 것들을 많은데 ‘송자’의 이름이 ‘조선’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그녀가 1931년 부산항을 떠날 때 일본인들이 그들을 ‘조선인’이라고 불렀던 것이 약 60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 작품은 재일교포의 삶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재일교포가 가장 많다는 ‘오사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일본의 파친코 업계를 재일교포가 많이 점유하고 있다는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일제시대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 그리고 지금도 살아있는 그들의 삶과 상처에 집중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조선인 혹은 재일(재일)로 불린 60여 년간의 일본에서의 고단한 삶이 선자의 주름살에 고스란히 박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막연하게 텍스트로만 알던 재일교포, 그리고 ‘오사카’와 ‘빠찡꼬’라는 키워드가 비주얼화돼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고, 드라마가 ‘여성’에 집중했음을 표방한다 해도 이들이 우리와 같은 핏줄이라는 점에서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송자가 일본에서의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놓은 김치는 한때 일본인들이 냄새가 난다는 핑계로 재일교포를 차별하는 구실이었지만 지금은 일본의 평범한 음식점이나 슈퍼마켓에서 쉽게 접하는 반찬이 된 것도 모자라 지금은 원래 우리 것이라며 HUT 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바로 이런 점이 1930년대 시점에서 친일 사업가 ‘한수(이민호)’가 조선을 ‘더러운 과거’라고 한 것과,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송자’가 넓은 세계를 보면서 ‘우리도 이길 수 있다’는 것으로 충돌하는 것과 대비된다. 융성기에 접어든 20세기 초의 일본과 그에 신음하던 조선인을 그린 1930년대와 불황의 시대로 접어들기 직전인 1989년의 일본과 여전히 그 일본에서 생존해 온 재일교포를 대비하듯 말이다. 주인공 ‘송자’를 중심으로 하여 많은 상징적인 것들을 많은데 ‘송자’의 이름이 ‘조선’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그녀가 1931년 부산항을 떠날 때 일본인들이 그들을 ‘조선인’이라고 불렀던 것이 약 60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이 작품은 재일교포의 삶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재일교포가 가장 많다는 ‘오사카’라는 지역을 배경으로 일본의 파친코 업계를 재일교포가 많이 점유하고 있다는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일제시대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조선인들, 그리고 지금도 살아있는 그들의 삶과 상처에 집중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조선인 혹은 재일(재일)로 불린 60여 년간의 일본에서의 고단한 삶이 선자의 주름살에 고스란히 박혀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막연하게 텍스트로만 알던 재일교포, 그리고 ‘오사카’와 ‘빠찡꼬’라는 키워드가 비주얼화돼 매우 인상적인 작품이고, 드라마가 ‘여성’에 집중했음을 표방한다 해도 이들이 우리와 같은 핏줄이라는 점에서 가슴이 아플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한 것은 송자가 일본에서의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놓은 김치는 한때 일본인들이 냄새가 난다는 핑계로 재일교포를 차별하는 구실이었지만 지금은 일본의 평범한 음식점이나 슈퍼마켓에서 쉽게 접하는 반찬이 된 것도 모자라 지금은 원래 우리 것이라며 HUT 소리를 낸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도 손자의 남편이자 목사인 ‘이삭’, 아들 ‘모자스'(‘모세’의 일본인 음차), 손자 ‘솔로몬’ 등 3대의 이름이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 등 작품 곳곳에 ‘기독교적’ 정서가 많이 흐른다. 원작자 ‘민진리’ 스스로도 “자신은 장로교인”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그녀의 외할아버지도 장로교 목사이자 고아원 교장으로 일본에서 부모를 잃고 부산으로 귀국한 한국 아이들을 돌봤다고 한다. 사실 원작 소설과는 각색된 드라마에서는 친일 사업가 ‘고한수’라는 인물의 비중이 주인공급인데, 이를 두고 소설 독자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낳은 것이 사실이다. 소설 속 ‘고한수’라는 캐릭터는 ‘친일’, ‘깡패 사위’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성공한 인물로, 이와 대비되는 인물이 바로 ‘선자’의 남편 ‘이삭’으로서 고된 삶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고개를 숙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삶을 선택한 여러 ‘자이니치’의 모습을 ‘송자’의 주변에 배치하지만, ‘고한수’의 역할은 ‘이삭’과 대비되는 삶에 역할만 가지고 있었던 것과 달리, 이 드라마에서는 ‘송자’에게는 애증의 존재처럼 그려질 것 같다는 점에 우려가 적지 않다. 이 원작에서의 각색 과정에서 변형된 것으로 알려진 것 중 불편한 것은 ‘선자’의 남편인 ‘이삭’의 행보와 관련된 묘사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 때문에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이삭 스스로가 옮긴 일본이었지만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등 일제에 대한 반감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던 소설과 달리 드라마에서는 그를 엉뚱한 방향으로 바꿔버렸다. 드라마는 일제에 항거한 ‘이삭’과 그의 맏형에 관련해 비아냥거리거나 무책임하다는 자세를 취하면서 소설 속에서 ‘선자’가 가진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지워버리는 동시에 왠지 면죄부를 받는 듯한 ‘고한수’와 ‘선자’의 이야기로 ‘시즌2’를 만들겠다는 노골적인 설정처럼 보인다. 본인이 원작 소설을 읽는 것까지 이어질 것 같지 않기 때문에 드라마든 소설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1945년 우리의 독립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결정했듯이, 우리는 그저 이 드라마에 대해서는 ‘시청자’일 뿐인 것처럼. 그럼에도 원작자나 제작진보다 우리가 더 ‘재일교포’에 대해서는 더 무지할 게 분명하다. 재일교포들이 그토록 박해받고 사는 동안 이 땅의 위정자들은 그들에게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할망하안. 이 작품에도 손자의 남편이자 목사인 ‘이삭’, 아들 ‘모자스'(‘모세’의 일본인 음차), 손자 ‘솔로몬’ 등 3대의 이름이 기독교와 관련이 있는 등 작품 곳곳에 ‘기독교적’ 정서가 많이 흐른다. 원작자 ‘민진리’ 스스로도 “자신은 장로교인”이라고 밝힌 바 있으며, 그녀의 외할아버지도 장로교 목사이자 고아원 교장으로 일본에서 부모를 잃고 부산으로 귀국한 한국 아이들을 돌봤다고 한다. 사실 원작 소설과는 각색된 드라마에서는 친일 사업가 ‘고한수’라는 인물의 비중이 주인공급인데, 이를 두고 소설 독자들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낳은 것이 사실이다. 소설 속 ‘고한수’라는 캐릭터는 ‘친일’, ‘깡패 사위’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성공한 인물로, 이와 대비되는 인물이 바로 ‘선자’의 남편 ‘이삭’으로서 고된 삶에도 불구하고 일제에 고개를 숙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삶을 선택한 여러 ‘자이니치’의 모습을 ‘송자’의 주변에 배치하지만, ‘고한수’의 역할은 ‘이삭’과 대비되는 삶에 역할만 가지고 있었던 것과 달리, 이 드라마에서는 ‘송자’에게는 애증의 존재처럼 그려질 것 같다는 점에 우려가 적지 않다. 이 원작에서의 각색 과정에서 변형된 것으로 알려진 것 중 불편한 것은 ‘선자’의 남편인 ‘이삭’의 행보와 관련된 묘사다. 드라마를 보지 않은 분들에게는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 때문에 언급할 수는 없지만, 이삭 스스로가 옮긴 일본이었지만 신사 참배를 거부하는 등 일제에 대한 반감이 어떠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던 소설과 달리 드라마에서는 그를 엉뚱한 방향으로 바꿔버렸다. 드라마는 일제에 항거한 ‘이삭’과 그의 맏형에 관련해 비아냥거리거나 무책임하다는 자세를 취하면서 소설 속에서 ‘선자’가 가진 이들에 대한 존경심을 지워버리는 동시에 왠지 면죄부를 받는 듯한 ‘고한수’와 ‘선자’의 이야기로 ‘시즌2’를 만들겠다는 노골적인 설정처럼 보인다. 본인이 원작 소설을 읽는 것까지 이어질 것 같지 않기 때문에 드라마든 소설의 차이가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1945년 우리의 독립을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결정했듯이, 우리는 그저 이 드라마에 대해서는 ‘시청자’일 뿐인 것처럼. 그럼에도 원작자나 제작진보다 우리가 더 ‘재일교포’에 대해서는 더 무지할 게 분명하다. 재일교포들이 그토록 박해받고 사는 동안 이 땅의 위정자들은 그들에게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것은 물론이다. 할망하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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